외주 개발 견적을 받다 보면 유독 눈에 띄는 제안이 있습니다. "AI를 활용하니 개발이 빨라져 기간도 절반, 비용도 절반"이라는 문구입니다. 발주를 앞둔 대표나 기획자 입장에서는 솔깃할 수밖에 없습니다. 하지만 이 견적은 실행 단계의 스코프 크립이나 QA 병목처럼 '진행 중에 터지는 문제'가 아니라, 계약서에 서명하기 전에 검증해야 하는 문제입니다. 견적서 자체가 근거 없는 낙관 위에 세워졌다면, 그 위험은 고스란히 발주사가 떠안게 됩니다.
이 글은 "AI라서 저절로 싸진다"는 통념을 원 출처 데이터로 검증하고, 발주사가 정량적 산정 근거를 요구해 견적서를 걸러내는 실무 방법을 다룹니다.
먼저 짚어야 할 것은, "AI를 쓰면 개발이 빨라진다"는 전제가 데이터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.
비영리 연구기관 METR가 2025년 7월 발표한 무작위 대조시험(RCT, arXiv:2507.09089)에서는, 숙련된 오픈소스 개발자가 자신에게 익숙한 코드베이스에서 AI 도구를 사용했을 때 오히려 작업이 약 19% 더 오래 걸렸습니다. 흥미로운 점은 개발자들이 사전에는 AI가 24% 빠르게 해줄 것으로 기대했고, 실제로 느려진 뒤에도 20% 빨라졌다고 믿는 '체감과 실측의 괴리'가 관찰됐다는 것입니다. 다만 METR는 2026년 2월 후속 공지에서 초청 개발자의 상당수가 'AI 미사용' 조건을 거부해 표본이 AI 수혜가 적은 쪽으로 치우쳤을 수 있다는 선택 편향 등 설계 한계를 인정하고 실험을 개편한다고 밝혔습니다. 즉 이 수치는 "AI가 항상 느리다"는 결론이 아니라, "체감 생산성은 실제 성과를 과대평가하기 쉽다"는 경고로 읽어야 합니다.
조직 단위 지표도 참고할 만합니다. Google Cloud DORA의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, AI 채택도가 25% 높아질 때 소프트웨어 전달 처리량은 약 1.5%, 전달 안정성은 약 7.2%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. AI가 개인의 코드 작성·문서화·리뷰 속도를 높이더라도, 전달 성과 전체가 개선된다는 보장은 없다는 뜻입니다. 견적서의 '반값·반기간'은 대개 개인 코딩 속도만을 근거로 삼는데, 실제 프로젝트 성과는 통합·테스트·배포·안정화까지 포함한다는 점에서 이 격차는 그대로 리스크가 됩니다.
그렇다면 발주사는 무엇을 요구해야 할까요? 핵심은 "할인율"이 아니라 "산정 근거"를 묻는 것입니다. 우리나라에는 이미 공신력 있는 기준이 있습니다.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(KOSA)의 'SW사업 대가산정 가이드'입니다.
이 가이드는 사용자에게 제공되는 기능을 정량적으로 계량한 규모 단위인 기능점수(FP)에 FP당 단가를 곱해 개발비를 산정합니다. 2024년 5월 13일 공표된 개정판에서 FP당 단가는 종전 55만3,114원에서 60만5,784원으로 9.5% 인상됐습니다. 즉 만들어야 할 기능의 규모가 정해지면, 그에 상응하는 '표준 개발비'의 준거점이 존재하는 셈입니다.
이 준거점이 있으면 '반값 견적'을 이렇게 검증할 수 있습니다.
검증의 마지막 단계는 확인한 내용을 계약 문서로 고정하는 것입니다. 구두 약속은 실행 단계에서 증발합니다. 발주 전 체크리스트를 제안합니다.
정리하면, 발주사가 던져야 할 질문은 "얼마나 싸게 해주시나요?"가 아니라 "이 가격이 나온 근거를 기능 단위로 보여주실 수 있나요?"입니다. AI는 분명 개발 방식을 바꾸고 있지만, 그것이 곧 '자동 할인'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. 좋은 개발 파트너라면 반값을 자랑하기보다, 왜 그 가격이 합당한지를 기능점수와 검증 계획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. 견적서를 읽는 눈이 곧 프로젝트의 첫 번째 리스크 관리입니다.